올 시즌 벼르는 개명파 20여명…이름값 할까

입력 2020-04-13 17:41   수정 2020-04-14 00:24


1997년 마스터스토너먼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타이거 우즈(45·미국)는 1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쳐 단독 4위에 올랐다. 당시 ‘아기 호랑이’ 정도였던 우즈에겐 만족스러운 출발. 우즈는 그날 저녁 친구들과 햄버거 프랜차이즈 ‘아비스’에서 가 비프&체다 샌드위치로 배를 채웠다. 2라운드, 3라운드가 끝난 뒤에도 똑같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해 마스터스 최초의 ‘흑인 우승자’가 된 우즈는 “음식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며 “첫날의 느낌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골프 선수들이 평소 얼마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프로골퍼는 변화에 보수적이다. 똑같은 루틴을 우선시하고, 이는 때로 ‘징크스’로 이어지기도 한다. 클럽도, 스윙도 선수들은 ‘잘될 때’의 기억을 곱씹으며 바꾸길 꺼린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안 된다면 변화를 꾀할 수밖에. ‘개명’은 이처럼 민감한 프로골퍼들이 자주 꺼내드는 카드다. 클럽이나 코치, 캐디를 바꾸는 ‘천지개벽’에 비해 위험 부담이 적고 ‘분위기 전환’에도 좋다는 이유에서다. ‘개명파’의 원조 격은 ‘탱크’ 최경주(50)다. 프로 등록 전에 일찌감치 개명했다. 원래 이름은 ‘최말주’. 할아버지 친구의 제안에 새 이름을 갖게 됐다.

13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 따르면 이름을 바꾼 선수는 KPGA가 281명(2008년 이후), KLPGA가 128명(2005년 이후)이다. 이 중 올 시즌에도 20여 명이 출격 채비를 하고 있다.

KPGA 코리안투어 김태훈(35)은 개명 덕을 톡톡히 봤다는 얘기를 듣는 대표적인 선수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2007년 기대를 한몸에 받고 투어에 데뷔했다가 드라이버 입스(yips)로 고생했다. 결국 이듬해 어머니의 권유로 김범식에서 현재 이름인 김태훈으로 바꿨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는 서서히 성적을 되찾았고 2013년 보성CC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둔 뒤 드라이버 입스를 완벽히 떨쳐냈다. 그는 그해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301.067야드로 ‘KPGA 장타상’을 거머쥐었다. 지난 시즌에도 제네시스포인트 10위에 오르며 개명 후 안정적인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KPGA 명출상(신인상) 출신 김태우(27)의 원래 이름은 김효석이다. 2012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그는 “당시 어머니가 사주를 보셨는데 김효석이라는 이름은 골프 선수로 성공할 수 없어 개명을 권유했다고 들었다”며 “돌이켜 보면 개명 후에 더 절박하게 노력했던 것 같다”고 했다.

군 복무 중인 김준성(28)도 새 이름을 얻은 뒤 달라졌다. 2015년 3월까지 김휘수로 살았던 그는 개명 후 1년5개월 뒤인 2016년 KPGA선수권대회를 제패하며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개명한 뒤로 이상하게도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KLPGA투어에서 뛰는 황율린(27), 이시온(31)도 변화를 꾀한 선수들이다. 2부 투어를 전전하던 2017년 초 황지애에서 황율린으로 이름을 바꿨고, 2015년까지 이성운으로 살아온 이시온도 새로운 이름으로 투어에서 뛰고 있다.

변화가 변화 자체의 의미에만 그친 경우가 물론 더 많다. KLPGA투어 양제윤(28)은 부진이 길어지자 양지승으로 개명했다가 다시 2년 전 원래 이름인 양제윤으로 이름을 되돌렸다. 그는 올 시즌을 2부 투어에서 맞이한다.

한 골프계 인사는 “개명은 사람에 따라 미신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선수들은 모든 걸 다 바꾸고 새 출발하겠다는 결연함의 증표라는 점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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